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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항에서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유람선도 타보고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라 온 세상을 발아래 두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들딸을 의사와 교사로 만들고 무사히 공직생활을 마치고 진갑 때 다섯 손주를 보고 공무원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아들은 병원(의원)을 경영합니다 잘나가는 아들딸이 있고공부 잘하는 손주들이 있고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마음을 잘 쓰는 아들이 있어난 행복합니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
딸은교원대에서 과 수석도 몇 번 하고초등교사가 되었으며아들은고교 2학년 마치고 카이스트 진학차의과학대 의전원을 마쳤고재학 중 장학금을 원 없이 받으며의사가 되었네딸은 초등교사아들은 병원(의원) 경영공부 잘하는 손주매일매일 자랑하고 싶네그래서, 나는 팔불출- 시인/수필가 김병연 -
아들딸의 대학 시절엔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추었습니다 아들딸을 의사와 교사로 만들고 무사히 공직 생활을 마치고 진갑 때 다섯 손주를 보고 공무원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아들은 병원(의원)을 경영합니다 이만하면 축복받은 삶이고 후회 없는 삶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남은 인생, 아들딸의 대학 시절만 같았으면…- 시인/수필가 김병연 -
걸을 수 있어 감사하고들을 수 있어 감사하고말할 수 있어 감사하고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아내가 있어 감사하고자식이 있어 감사하고손주가 있어 감사하고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감사하고또 감사합니다오늘도 행복하고내일도 행복하세요올해도 행복하고내년에도 행복하세요언제나 행복하고늘 행복하고항상 행복하세요- 시인/수필가 김병연 -
K의 인생 이야기 K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계모는 밥을 제때 해주지 않았습니다. 계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가면 지각을 했습니다. 지각을 하면 교문에서 규율부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기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침밥을 굶고 학교에 가면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고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를 저녁 한 끼만 먹고 살려니 배가 너무 고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K는 등교를 포기하고 아버지 몰래 고모의 집으로 갔습니다. 수소문 끝에 고모 집에 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아버지가 데리러 와서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침밥을 먹고 등교하자니 규율부의 구타와 기합을 감내하기 어렵고 아침밥을 굶고 등교하자니 배가 고파 살 수 없으니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K에게 방을 얻어줄 테니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K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가 중학교 인근 마을에 초가지붕의 빈집을 무료로 임차하였고, 그 빈집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다 하숙도 몇 개월 하였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K는 25살 때 방위병으로 공군교육사령부 내에 있는 공군 2사관학교에서 근무했는데, 근무 한 달이 지나자 쌀도 떨어지고 연탄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90원짜리 빵 한두 봉지로 하루를 살았고 어떤 날은 세 끼를 모두 굶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다 보니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는다면 미래가 없습니다. 살아야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사촌 여동생을 찾아갔습니다. 내 사정이 이러하니 5000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밥도 한 끼 얻어먹고 5000원을 수중에 넣으니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 돈으로 과자를 사들고 인사처장(소령)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사정을 말하고 공군교육사령부 지원대대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밥은 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1주일도 안 돼 지원대대로 발령을 받았고 세끼를 모두 부대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K는 부친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김영삼 씨는 25살에 국회의원을 했는데, ‘이 정도는 내 스스로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K에게는 부친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돈은 없고 환갑비용 조달방법을 고민하던 중 방법을 찾았습니다. 공무원이던 그는 퇴직금을 담보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대출을 받아 매월 조금씩 갚는 것입니다. 부친과 환갑잔치를 상의했습니다. 부친은 돈도 없고 부조가 들어올 데도 별로 없는데 환갑잔치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친의 환갑잔치는 대부분 안하지만, 부친의 환갑잔치는 모두가 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고 관행이었습니다. 만약 부친의 환갑잔치를 경제적 이유로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욕을 할 것입니다. 그 새끼는 제 애비 환갑도 안 하는 놈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친을 설득했습니다. 환갑잔치 준비에 필요한 물건은 외상으로 갔다 쓰고 난 후 부조금으로 갚아주고 모자라는 돈은 제가 대출받아 월급에서 매월 조금씩 갚겠으니 아들 나쁜 놈 만들지 말고 환갑잔치를 하자고 했더니 부친은 마침내 응낙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친의 환갑잔치를 하였는데 여러 동네의 이장들이 마을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 씨의 환갑잔치가 언제 어디서 있으니 참석하실 분은 참석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예상 외로 많이 왔고 부조도 예상 외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환갑잔치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도 돈이 몇백만원 남았습니다. 부친은 이 돈을 네가 갔다 두었다가 나 죽으면 묘소에 석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K의 계모는 네 아버지 하고 안 살 테니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친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둘째 아들을 불러 그 돈을 농 안에 갔다 넣으라고 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부친의 환갑잔치를 끝냈습니다. 환갑잔치를 마치고 몇 년이 지난 후 K는 장인을 통하여 들었는데 부친의 환갑 때 받은 부조금 중 남은 돈을 모두 큰아들이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척 몇 분에게 확인 한 바 계모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K는 당장 계모와 따지고 싶었지만 부친의 만류로 참았습니다. 부친의 작고 후 계모에게 왜 그렇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계모의 답변은 천연덕스럽게 가져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도 안 난다고 합니다. 발뒤꿈치도 보지 못하고 어떻게 허벅지 봤다고 하는 것인지, 죽은 후 그 죄를 어떻게 다 받으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K의 계모가 환갑이 되었습니다. 장수시대가 되고 보니 그때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환갑잔치가 없어졌고, 학창시절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았고 아들딸 돌 때도 찾아주지 않은 7살 연상의 계모이지만, 부친을 생각하여 계모에게 환갑기념 해외여행 비용으로 일백만원(당시 2박3일 태국, 중국 등의 여행비용이 1인당 50만원)을 주었습니다. K의 부친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88세에 운명하셨습니다. 부조금으로 부친의 장례비용을 계산하고 나니 900여만원 남았습니다. 900여만원을 테이블 위에 놓고 K와 K의 이복동생이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습니다. K의 이복동생은 형님이 300만원 가져가시라고 했습니다. K는 네가 모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K의 이복동생은 남들도 형제간에 똑같이 나누어 가는데 왜 제가 모두 가져가느냐고 했습니다. K는 이복동생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내가 항렬이 형이지 나이가 형은 아니지 않느냐?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복동생은 19살 연상의 이복형 K가 시키는 대로 900여만원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K는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事必歸正, 아마도 K 같은 사람을 위로하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루 종일 귓전을 맴돌고 또 맴돕니다. Y의 인생 이야기 Y는 스물여덟 살에 결혼하여 스물아홉 살에 딸을 낳고 서른한 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즘이야 평균 결혼 연령이 남녀 모두 30세가 넘었으니 결혼 참 일찍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남자의 평균 결혼 연령이 스물여섯 살이었으니 결혼이 조금 늦은 것입니다. Y는 사회적으로 남보다 우월하게 아들딸을 키우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들이 돌도 안 돼 뇌막염에 걸려 충남대학교병원에 입원하고 4년여 동안 계속된 아내의 위장병은 의료보험 연간 치료일 수 상한인 180일이 가까워지면 한의원에서 치료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뇌막염을 앓은 사람은 반신불수나 저능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Y는 한동안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행히도 후유증이 없었고 총명했습니다. 글자와 숫자를 가르치니 아들딸은 경쟁이라도 하듯 열심히 그리고 잘했다고 합니다. Y의 아내는 아들딸에게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과자를 사주는 대신 매월 용돈을 줬는데, 용돈을 받는 즉시 전액 새마을금고에 저금을 했고 둘이는 저금 경쟁을 했습니다. 부모가 시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Y의 아들딸은 경쟁적으로 했고, 다른 아이들이 과자 먹는 것을 보고 과자를 사달라고 하면 혼날까 봐 엄마에게 과자 사달라고는 못하고 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는 짓이 기특하여 엄마가 용돈 외에 과자도 조금은 사주었다고 합니다. Y의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공부를 잘하다 보니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Y의 딸은 H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Y의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이면 담임선생(擔任先生)님의 지시에 따라 학교에 혼자 남았고, 담임선생님은 짜장면을 사주고, 가르치는 대로 아는 것이 신기하여 수학(數學) 공부(工夫)를 별도로 시켰고 장기와 오목도 가르친 후 같이 두었다고 합니다. Y의 아들은 추첨으로 U고등학교(매년 서울대급 이상의 대학 합격생 3~5명 배출)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초기에 진로를 고민하더니 고등학교 2학년 때 카이스트 합격을 목표로 세웠고 마침내 해냈습니다. 이때가 U고등학교 개교 32주년이었고 최초의 카이스트 합격생 배출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방송으로 카이스트 합격 소식을 전교생에게 알렸고 현수막도 내걸었으며 방송을 들은 많은 선생님들이 교실로 찾아와 축하를 해줬고 카이스트(KAIST) 합격생의 얼굴을 보기 위해 교실 앞에 많은 학생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Y의 아들은 장학금을 받아 승용차(뉴아반떼XD)를 샀고, 방학 때 친구들과 만났다 귀가할 때면 친구들을 대문 앞까지 태워다 주곤 했다고 합니다. Y의 아들은 카이스트 졸업 후 미국(美國) 유학(留學)을 포기하고 C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을 나와 의사가 되었습니다. Y는 아들딸을 남보다 우월하게 키우려면, 평생의 한이었던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려면 돈을 모아야 했습니다. 공직자가 수입을 늘리려 한다면 공직 수명이 짧아지기 십상입니다.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Y의 아내는 미원과 미풍이 조미료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시절, 미원과 미풍이 그 맛이 그 맛인 것을 알고 단위중량당 가격을 계산해보고 조미료를 구입하곤 했다고 합니다. Y는 결혼 때 처가에서 해준 신사복과 코트를 아끼고 아끼다 세탁 한 번도 못하고 그냥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때는 깡말랐던 몸이 비대하여 입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Y는 두 자식이 모두 대학을 합격하고 난 후에 처음으로 가족외식(家族外食)을 했고 가족소풍(家族逍風)을 갔으며,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가끔 고기를 집에서 먹을 때는 절약하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았고 회식이나 친목 모임에서 고기를 먹는 것으로 영양 보충을 대신했습니다. 지금도 반찬이 맛이 없을 땐 밥을 조금 먹으니 살이 빠져 좋고 쌀값이 조금 들어 좋겠구나 하고 긍정(肯定)적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해마다 몇 차례씩 서울에 다녀왔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행 첫차를 탔고 오후 4시경 귀가하여 점식식사 겸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단독주택을 구입하면서 약간의 채무가 있을 때는 구내식당에서 한 끼에 1200원하는 점심을 굶었습니다. 그러니까 Y의 부부는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내핍생활을 했습니다. Y는 그동안의 고생과 아들딸의 성공은 하나님이 주신 팔자(근거 : 요한복음 9:1~3)라고 말합니다. 이 고생은 산교육으로 좋은 자식 교육이었으며,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Y는 아들딸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합니다. Y는 이제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즐겁고 보람있게,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미국의 노엘존슨은 폐인이고 중환자(심장병)로 살았으나, 71세부터 복싱을 연마하여 세계 시니어 복싱챔피언을 다섯 차례 방어했고, 90세에 마라톤과 복싱으로 30대 건강을 유지한 전설적 실존 인물입니다. 그 전설적 실존 인물 노엘존슨을 본보기로 하여 Y는, 건강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젊어졌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라고 하며,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마태복음 7장7절 말씀"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와 마가복음 9장23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Y는 "시기는 뼈의 썩음이라"는 잠언 14장30절 말씀을 모든 인간이 깨달아서 시기 없는 세상이 되게 하옵시고,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로부터 가족을 지켜주시옵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
형형색색의 꽃이앞다퉈 피어나는 봄이 있어세상은 아름답고현란하게 물든 단풍과황금물결 일렁이는 들판과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와낭만이 가득한 가을이 있어세상은 아름답고자식과 명예 등의 보람을 주렁주렁 매단 인생의 가을이 있어세상은 아름답습니다아름다운 세상은 먼 길을 달려온 목마른 장수에게버들잎을 띄워 물을 건네주는지혜와 같은 것- 시인/수필가 김병연 -
더운 줄도 모르고열심히 일만 했더니어느새 가을가을이 가면겨울이 오겠구려몸은 날마다북망산을 향해 가고총알 같은 세월 속에가는 세월 원망하네하지만말썽 한 번 안 부리고신통하게 공부를 잘해항상 부모의 맘을 기쁘게 한아들딸이 있어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잘나가는 아들딸이 있고공부 잘하는 손주가 있어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때가 되면 혼인하여 달콤한 신혼생활(新婚生活)을 하고, 얼마 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열심히 기르고, 언젠가는 은퇴하여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며, 천명(天命)을 받아 생(生)을 마감하는 것을 아마도 인간의 보편적 삶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부모를 잘 만나 부족함 없이 살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속 썩이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즐겁게 살다가 고통 없이 편안히 죽는다면, 이는 누구나 바라는 꿈같은 삶이다. 어디 그런 꿈같은 삶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상당수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질환이나 소아마비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 부모의 요절로 어쩔 수 없이 소년ㆍ소녀 가장이 된 아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아이 등 고난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면 편안히 잘사는 자들과 고난의 삶을 사는 자들의 현격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연 국가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부모나 환경을 원망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충분치 않은 사회안전망에 의존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해결책은 그리 녹록치 않다. 위안을 삼자면 그래도 북한이나 아프리카 같은 최빈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과 몇 배의 고통(苦痛)이 수반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제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확실하게 공평(公平)한 것이 있다면,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20세라는 것이다. 수조원의 재산가나 절대 권력자도,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천재(天才)나 미인(美人)도 모두가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 것인가. 세상을 뒤흔들던 이들도 때가 되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잘살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하지만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되거나 흙에 묻힘으로써 허망한 인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특별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남을 괴롭히고 빼앗고 속이고 죽이는 것들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이러한 이기적 삶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양심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 죽음을 늘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이 필요하다. 죽어가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죽음 앞에선 늘 경건하고 엄숙해진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남을 배려하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갑자기 죽음이 닥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그동안의 삶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죽음을 생각하고 양심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인간의 육체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죽음에 대비하고 겸손(謙遜)하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양심적(良心的) 인간(人間)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한민국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자를 개인적 양심, 후자를 직업적 양심이라고 한다. 양심은 이타적(利他的) 양심이 돼야지 이기적 양심이 돼선 안 된다. 수사나 재판도 사심 없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양심에 의거해야 한다. 양심을 회복하여 위기를 양심으로 해결하고, 시기?질투?교만?이기적 사고를 사랑과 칭찬과 겸손과 이타적 사고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늘 생각하고 양심을 회복하여 남을 배려하고 선(善)과 덕(德)을 베풀고 후회하지 않는 떳떳한 인간이 돼야 한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오늘의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다. 미래의 계획이 어디까지나 환상적인 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미래를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일터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 말했다. 가난은 불편할 따름이지 죄는 아니라고 말했다. 떳떳하게 세상(世上)을 향해 더디지만 힘찬 발걸음을 부지런히 내딛는 의지를 보인 말이다. 그렇다. 가난은 불편(不便)할 따름이지 행복(幸福)을 구속(拘束)하지는 못한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만족해하는 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그때가 참 좋았다고 말할 때가 더러 있지 않았던가.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며 감격했던 기억 또한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무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어도, 아이들 옷 한 벌에도, 농담(弄談) 한마디에도 행복(幸福)했던 적이 있었다. 세탁기나 냉장고 또는 컬러텔레비전을 살 때도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없이 살아도 근검절약(勤儉節約)으로 한 가정을 꾸려가는 데서 행복은 오순도순 찾아오곤 하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행복을 아는지 모르겠다. 결혼과 동시에 혼수다 뭐다 하면서 집까지 장만하여 가니 아쉬울 것이 없겠다. 아쉬움이 없는 만큼 행복의 강도 또한 더욱 높아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율은 왜 이리 높아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질적 풍요만이 행복인 양 착각하고 배려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쉽게 만난다. 불신의 사회 풍조는 고학력 시대에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학력이 높으면 사고도 깊고 이성적 사고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원만하고 탁월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現實)은 그렇지 못하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 마음 한번 바꾸면 지옥이 천국이 된다는데, 왜 사사로운 욕망(欲望)에만 한눈팔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동심의 세계는 순수하고 맑아서 누구나 가슴속에 고이 갈무리하고 있는 세계이다. 행복 만들기를 위해 오늘 하루만이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세상이지만 원시적인 사고가 고질병을 고치는 첩경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일에도 만족(滿足)할 줄 아는 건강(健康)한 사고(思考)가 요즘처럼 각박(刻薄)한 세상에 행복(幸福)을 창조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행복은 욕망에 반비례한다. 이기적 욕망을 줄이는 길만이 행복 창조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과 남을 절대 비교해선 안 된다. 비교는 필연적(必然的)으로 시샘과 열등감을 낳는다. 시샘은 모든 인간관계(人間關係)를 파괴하는 핵폭탄이다. 남 잘되는 꼴 죽어도 못 보는 심리(心理)를 버리지 못하면 행복(幸福)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筆者)는 ‘민족의 수치’란 제목의 시를 책을 낼 때마다 싣는다. 이 시(詩)는 2004년에 썼고 63개 신문에 게재되었다. 오늘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싶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함을 이르는 말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친구가 잘돼도/ 덕을 볼 수 있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춤을 출 일이지/ 어떻게/ 배가 아프단 말인가/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사람이/ 자기 잘될 순 없다// 그래서/ 이 속담은 우리 민족/ 최대의 수치다.그리고 행복(幸福)은 배려(配慮)와 사랑에서 오는 향기로운 한 송이 꽃이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
어버이날을 맞아 따뜻한 나눔이 펼쳐졌다. 지난 8일, 처갓집양념치킨 대구경북지사(대표 박승환)는 군위군에 위치한 군위해피케어주간보호센터(센터장 박계순)를 방문해 치킨 70마리를 기부하며 훈훈한 온정을 나눴다.이날 지사 관계자들은 생닭을 직접 가져와 트럭에서 치킨을 즉석에서 튀기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어르신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갓 튀긴 치킨은 오후 간식으로 제공되었으며, 이후 어르신들과 직원들에게 1인당 1마리씩 전달됐다.박계순 센터장은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주신 처갓집양념치킨 측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박승환 대표는 “작은 정성이지만 어르신들께 기쁨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따뜻한 나눔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해주 오씨 종친들이 한자리에 모여 뿌리를 되새기고 화합을 다지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2025년 5월 11일, 해주 오씨 화수회(회장 오근석)는 대구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산성마루에서 정기총회를 성대히 개최했다. ▲ 해주오씨 화수회 회장 인사말(사진=군위넷)이번 총회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종친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소통과 친목의 장으로 펼쳐졌다.총회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경과 보고, 내빈소개, 주요 안건 심의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이어진 만찬과 자유로운 담소 속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특히 종친 간의 끈끈한 정과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이번 총회는 세대를 아우르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 해주오씨 화수회(사진=군위넷)오근석 회장은 “해주 오씨의 전통과 명맥을 잇고,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화수회의 중요한 사명”이라며 “앞으로도 꾸준한 교류와 나눔을 통해 더욱 단단한 공동체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팔공산의 신록 속에서 열린 이번 정기총회는 해주 오씨의 단결된 힘과 공동체 정신을 다시금 확인한 뜻깊은 행사로, 참석자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하루를 선사했다.
존경하는 군위 군민 여러분, 그리고 군위넷 포털을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2025년, 을사년 푸른 뱀띠의 해가 밝아옵니다. 뱀은 변화와 재생, 그리고 지혜의 상징입니다.2025년은 군위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해가 될 것입니다푸른 뱀이 상징하는 지혜와 재생의 힘을 바탕으로, 군위군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지역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대구와의 협력을 통해 군위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지역 발전의 중요한 기초를 다지게 될 것입니다.또한, TK신공항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군위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군위의 발전과 함께 군부대 및 공용화기사격장 유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의견이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특히 의흥면과 삼국유사면 주민들은 군부대와 화기사격장이 해당 지역에 유치되는 것에 대해 환경적, 안전적 우려와 생활 질의 저하를 이유로 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이 문제는 군위의 미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군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따라서 군위는 군부대와 화기사격장 유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과의 열린 대화와 소통을 지속하고, 가능한 대체 부지 검토 및 주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안전 대책과 환경 보호 방안을 제시해야 할 중요한 숙제입니다.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에서 군위넷은 군위의 가능성과 비전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군위넷은 지역의 정보와 소식을 제공함으로써 군민들이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지역 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군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를 담아내어, 군위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지혜의 장이 될 것입니다.2025년, 푸른 뱀띠의 해는 변화를 맞이하고,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군위넷과 함께 군위의 미래를 그려 나가며, 군민 여러분과 함께 더 밝고 풍요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겠습니다.올 한 해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군위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고, 함께 힘차게 나아갑시다.군위넷 발행인 최미경
지난 19일 대구 현대자동차 이차전지 부품협력사 대표들의 모임인 일송회(회장 ㈜신창정밀 권원기 대표 외 13개사)는 군위 관내 재가이용시설인 군위해피케어주간보호센터(대표 박계순)를 방문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기부금 300만원을 전달했다.▲ 이웃사랑 나눔 기부금 전달(사진=군위해피케어주간보호센터) 군위가 제2의고향이라고 말하며, 군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일송회 회장 권원기 대표는 “지역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거동이 불편해 우울증이나 고독사로 쓸쓸한 노후를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 편안한 노후생활을 영위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송회는 매년 연말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나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군위해피케어주간보호센터 박계순 대표는 “젊은 시절 지역발전을 위해 힘쓰신 어르신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일송회 회원들의 따뜻한 나눔에 힘입어 지역사회 어르신들을 섬기는 모범적인 기관이 되겠다.”고 전했다.
7월 4일, 국제로타리 3630지구 군위 로타리클럽에서 회장 이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이취임식은 신임 회장 월곡 최기환 씨가 새롭게 임명되는 자리였습니다. 군위 로타리클럽은 지역사회 봉사 활동과 국제적 교류를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로, 이번 이취임식을 통해 앞으로의 새로운 활동 방향과 목표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김진열 군위군수, 최규종 군위군의회 의장, 박창석 시의원, 홍복순, 박수현, 장판철, 서대식, 박운표 의원, 박배은 군위축협조합장이 참석했으며, 한마음 통기타 축하 공연도 열렸습니다. 신임 회장 최기환 씨는 "회원들 간의 화합을 우선으로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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